본문 바로가기
독서노트

모니시 파브라이,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원제:단도투자 DHANDHO INVESTMENT)

by 앉아서 세계속으로 2021. 10. 26.
반응형

절판되었다가 최근 다시 출간된 모니시 파브라이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원제를 그대로 옮겨 '단도 투자'로 발간했으나 새로 찍으면서 제목을 바꾸었다. (아마도 우리에게 '단도'와 같은 발음의 다른 단어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읽은 지는 오래 되었다. 다른 곳에 적어두었던 후기인데 그 페이지를 삭제하게 되어서 여기 옮겨둔다. 

짧은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라 읽기가 편하다. 단도 투자는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단순한 투자논리와 절대로 게임에서 질 수 없는 구체적 전략으로 초심자들에게 굉장히 좋은 입문서다. 직설적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투자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나는 성공한 투자자로서 파브라이의 능력보다 돈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먼저 조명해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투자실력보다 돈을 바라보고 사용하는 관점이 감동적이었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사고방식은 여전히 우리 뇌 어딘가에 깔려있는 의식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생각의 방향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돈을 천하게 바라보는 의식은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본의 올바를 흐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능력이 있다면, 특히 이타적이고 선한 의지를 더 높은 삶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부를 키우는 일이 더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 한다. 

사실 돈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부자가 천국에 드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성경 말씀은 돈과 부 그 자체를 죄악으로 선언한 것이 아니다. 돈을 움켜 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에서 부자들 가운데 선한 삶의 태도로 칭송 받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우리는 흔히 재물에 대한 탐욕과 재물을 소유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오해한다. 탐욕은 나만 가지려고 하는 것이고 소유는 내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무엇을 뜻한다. 재물에 대한 욕망은 그 사람의 태도를 설명하는 말이고 재물을 소유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객관적인 상태다. '부자' 자체가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재물에 대한 욕망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재물=악'이라는 등식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돈은 교환의 도구일 뿐, 그 자체로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모니시 파브라이는 단도투자를 설명하면서 독자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부자가 되려는 목적과 부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짧지만 강렬한 가치관을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단도투자의 공식으로 부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돈을 잘 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책의 마무리를 이와 같이 한 데에 크게 공감한다. 만일 능력이 된다면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최대한 부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 악한 사람이 돈을 가지면 악하게 사용하게 되고 선한 사람이 돈을 가지게 되면 선하게 사용할 것이다. 같은 이슬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고 하였다. 선한 사람들은 탐욕이 자기 영혼을 더럽힐까봐 조심하는 사람들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사람인 워렌버핏은 사 후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기로 법적 절차를 끝내놓았다. 조선 후기 왕실을 제외하고 최고의 부자라고 알려진 우당 이회영 선생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세계 평화를 위협하자 전재산을 일제와 싸우는 일에 쏟아부었다. 조선 최고 부자 우당의 마지막은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 뤼순 감옥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조선의 최고 부자였지만 자기 재산에 한 푼도 욕망을 품지 않았다. 돈이 사람의 본질을 어찌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유자가 원래 어떤 가치관으로 살았느냐에 따라 돈은 흘러다닐 뿐이다. 

 

전세계가 자본주의 세상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려면 자본이 강물처럼 세상 구석구석 흘러서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욕망에 가로막히면 어떤 곳은 사막을 피할 길이 없어진다. 

기분 좋은 극단적 상황을 상상해보자. 부자가 될 능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적절한 능력만큼 부자가 된다면 선한 의지를 가진 부자들과 그렇지 못한 부자들이 정규분포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모집단이 크면 클수록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인류 전체의 가치 방향은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공동선에 투자하고, 평화를 지향하고, 가난을 퇴치하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비록 개개인이 모두 그러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분위기가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우세할 것이다. 인간의 또다른 본능에는 남에게 엉망인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하지 않는 심리가 있다. 마음 속에 숨겨둔 엉망인 생각이 있어도 보편적인 윤리 도덕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은 계속해서 숨기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혹시 선한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도 사회적 시선이나 분위기를 의식하여 좀 더 선한 일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단도투자로 부자가 되는 방법보다 마지막 단락에 이렇게 감상의 비중을 두는 것이 파브라이의 의도에 충실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결론에서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돈을 어떻게 쓸 계획인가요?'

 

'단도'는 인도의 구자라트 지역에서 쓰는 단어다. '부'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다나(DHANA)'에서 비롯되었다. 역자는 '부를 창출하는 노력'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단도'는 투자의 원칙 같은 개념의 단어다. 

'성공하면 크게 얻고 실패해도 손해가 없는 투자.'

당연해 보이지만 우리의 행동은 자주 이 당연한 원칙을 외면한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하면 크게 얻고 실패하면 폭망하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본성의 결함이다. 함정이 있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저 앞에 기대되는 큰 이익을 생각하면 위험과 함정은 애써 외면한다. 신경과학에서는 우리 인식이 보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당연하게 보이는 단도투자의 원칙을 실전에서 성공적으로 적용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소위 가치투자를 제대로 지향하는 사람들은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모른다.'라고 대답한다. 정말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시장은 예측 할 수 없는 세계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예측하려고 한다. 이것도 하나의 결함적 본성이다. 우리는 차트와 같은 과거의 흔적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비밀을 찾고싶어한다. 나심 탈레브는 그런 사람들을 '멍청이'라고 일갈했다. 

 

파브라이의 방법도 그러하다. 예측에는 관심이 없다. 단도투자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적 비밀이 아니라 투자의 태도다. 투자의 대가들은 폭풍처럼 요동치는 시장의 흐름과 세상의 뉴스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성공하면 크게 얻고 실패해도 손해가 별로 없는' 투자라면 말이다. 

사람들은 '위험'과 '불확실성'을 혼동한다. 흔히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는 말을 한다. 사람들은 그 기업과 관련되 뉴스가 나올때마다 정신없이 팔고 정신없이 산다. 이 때문에 불확실성은 주가를 끌어내리고 주가가 싸지면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즉, 투자의 비용이 줄어들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이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실패해도 손해가 없는 투자다. 파브라이는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만들어지는 조합을 제시한다. 

1. 고위험, 저불확실성

2. 고위험, 고불확실성

3. 저위험, 고불확실성

4. 저위험, 저불확실성

4번의 경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서 밸류에이션이 높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는 3번이다. 저위험은 가격이 충분히 저렴한 상황, 고불확실성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그럼 아무것도 선택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때는 나심 탈레브의 의견이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차피 고불확실성은 예측한다는 의미이고 시장은 예측이 불가능한 세계이다. 시장 흐름은 1+1=2라는 공식이 아니다. 파브라이의 두번 째 원칙, 실패해도 손해가 적다는 말은 실패를 감수할 만큼만 투자하라는 말이다. 그 투자가 우리의 밑천 규모를 바꾸어 줄 것이다. 고불확실성은 성공했을 때에는 엄청난 수익을 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친환경 산업은 전망이 좋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간 수익률이 형편없었다. 아직 가시적인 수익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팬데믹으로 세계경제가 경기를 일으킨 후 전세계가 지구 환경을 지키는 일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관련 업체들의 주가가 갑자기 폭등했다. 가격적으로는 고위험 주식이 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불확실성은 제거되었을까? 어느 국가의 과학자들이 핵융합발전(현재 핵발전소들이 사용중인 핵분열발전이 아니라)을 연구하고 있고 안정적이고 환경에 무해한 초소형 인공태양을 개발하는 데 갑자기 성공한다면 유망한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기업들은 갑자기 몰락할 수도 있다. 이런 불확실성은 10년 전에도 있었으므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아직 해소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을 외면할 만큼 혁신적인 무엇이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낮으므로 실패할 불확실성보다는 성공할 불확실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주식의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졌던 시기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친환경 에너지를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상태가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이것이다. 이 방식대로 투자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이성과 감정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뉴스와 차트와 호가창이다. 이성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재무제표와 사업계획서와 큰 틀에서 세상의 흐름을 보는 눈이다. (단기투자자들이나 차트 투자에 대해서는 나는 전혀 모르겠다. 그런 방식으로도 해보았지만 나는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어서 늘 실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을 건드리는 요소들을 멀리해야 성공한다. 그런 세밀한 흐름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어쨌거나 주식보다 부동산에서 투자 성공률이 높은 것은 부동산의 경우 가격 등락으로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에도 매도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4월 카카오가 더 오를까 하는 불안감에 단타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 이성은 카카오가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대체할 수 없는 필수품이니 반드시 더 오른다였지만 감정은 올라도 불안 떨어져도 불안이었다. 차트를 매일같이 감시했기 때문이었다. 가격이 오른 날은 실적 전망이 좋아 투자심리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그러다가 오후에 가격이 떨어지면 실적 전망 불확실성으로 투지심리가 악화되었다고 보도가 나온다. 그냥 아무렇게나 나온다. 차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벤자민 그레이엄이 시장을 조울증 환자라고 말했고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산책하는 강아지에 비유했다. 어디로 갈 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산책의 최종적 목적지는 제멋대로 변하지 않는다.

결국 '단도'의 개념도 비슷비슷한 결론으로 나아간다. 작은 결과의 합리성을 따지고 차트를 계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면 단도투자의 대상을 찾을 수가 없다. 

 

반응형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방천, [관점]  (0) 2021.10.27

댓글